좀비캣

  • 좀비x무무x여로/ 독립이랑 출판 얘기

독립출판, 독립영화, 독립연구자, 독립기획자, 인디음악, 인디게임…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독립(獨立, Independent)이라는 접두사가 사용된다. 그것들은 대체로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는지, 즉 ‘무엇이 아닌지’ 말함으로써 시작한다. (…) 나는 접두사 ‘독립’을 말하는 수행적 의미가 무엇인지, 이 책 자신의 형태인 ‘독립출판’을 통해 말해보려고 한다.

(…) 독립OO을 “유통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관행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등 내용적으로 규정할수록 오히려 공허해지는 까닭을 이제 알겠다. 나는 어떤 것들로부터 독립했지만, 다른 어떤 것들에는 여전히 의지하거나 의존하거나 무지했다. 그럼에도 내가 어떠한 ‘독립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면, 독립이란 무엇으로부터 독립할지 그 대상과 기준을 스스로의 조건 속에서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독립은 기성의 대안 같은 게 아니다. ‘블루오션(blue ocean)’의 순화어가 ‘대안시장’이듯, 우리가 같은 사실, 같은 계획, 같은 목적의 다른 방법일 뿐이라면, 그때 독립은 차이들의 체계로서 하나의 계(시스템)에 이르지 못하고 체계적인 차이로서 대안에 머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독립OO’으로부터 대안이 되어줄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기존 시스템의 뒷문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독립은 오히려 그 ‘훌륭함’을 문제 삼는 방법이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지 훌륭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받아들여진다면, 반드시 사후적일 것이다. 

(...) 임경용의 정의대로 자주출판이 “항상 다른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면, 독립출판은 아직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언제나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생성 중의 언어는 본래 가설적이고 가변적이기에, 그것의 가치를 말하려면 우선 기다려야 한다. 한 단어 다음에 무슨 단어가 올 지 알 수 없는 언어 행위처럼, 독립출판은 ‘계속 말한다’는 원칙 아래 끝없이 지난 발화를 변경하면서 자기 말의 근거를 다음의 말하기에 두는 자기생산적 시스템이다.

(...) 그러니 자기, 자유, 독립, 자주 등의 단어가 관습적으로 암시하는 개별자적 인상과 달리, 실제로 독립출판은 동료적일 수밖에 없다. ‘독립’은 자신의 현재를 제약이나 결여로 판단하는 기성의 체계를 부정하고, 그것을 하나의 환경으로 중립화한 다음, 미래의 조건으로 프로그래밍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의 조건인지는 알 수 없다. 출발어는 알지만 도착어는 모르는 상황, 그 알 수 없음을 함께 할 수 있냐는 것, 미래의 언어를 현재에 가설해놓고, 지금 이 사람의 말이 의미 있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서로의 청자로 함께 머무르는 관계, 리사 앤 아우어바흐(Lisa Ane Auerbach)가 “네가 직접 하지 말라(Don’t Do It YourSelf)”며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돕고 교환하라고 요구했던 까닭이다.

— 이여로, 『어떻게 ‘독립출판’인가: 접두사 ‘독립’의 수행성에 관하여』


여로 좀비캣이요? 좀비챗 아니었어요?

선미 좀비챗은 너무 테헤란로 같아요.

동인 커피챗처럼요?

여로 왜 캣인데요? 

동인 고양이인데요. 쿠키런 아시죠? 그냥 쿠키런 쿠키들의 펫 같은 거예요. 까닭 뭐 그런 게 없어요… 그런데 챗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이런 인터뷰 앞으로 캣챗이라고 할래요. 그러면, 대담에 앞서서 『어떻게 ‘독립출판’인가?: 접두사 ‘독립’의 수행성에 관하여』 이 글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러니까 이걸 왜 쓸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좀 그것도 궁금했어요.

여로 선미 님이 말씀해 주시겠어요?

동인 아, 선미 님이 여로 님께 청탁하셨던 거예요?

선미 에지페르체시 시리즈로 부탁드렸어요. 에지페르체시는 소규모 출판사가 가진 자본의 한계, 즉흥성, 무계획성을 적극적으로 유희하면서 다양한 장르에 있는 필자를 포섭하려고 해요. 여로 님과 저는 원래 블로그 이웃이었는데,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웃음) 여로 님이 다양한 걸 하셨잖아요. 기획하고, 발행하고, 편집하고, 번역하고,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그 왜, 『긴 끈』을 내셨을 때는 매일 소셜 미디어에 ‘제가 어디에 몇 시까지 있으니 책 사고 싶은 사람은 연락해 달라’라고 올려서 직거래로만 유통하신 것도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아, 이 사람은 뭔가 출판 과정에서 나눠지는 여러 역할을 다양하게 체험해 본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독립출판의 성격을 특히 유통에서 독특하게 살려 보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청탁을 드렸어요.

동인 어떤 주제로 글을 부탁하셨어요?

선미 메일을 썼는데 오래 전이라서 기억이 안 나네요.

여로 제가 메일을 한번 볼게요.

동인 사실 두 분도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했거든요.

여로 그때 그게 그 모임이 처음 아니었나요? (선미: 맞아요.) 미술사 읽기 모임을 같이 했었어요. 임가영 님이랑 또 다른 몇 분이랑. 선미 님께는 그냥 블로그 이웃이다 보니까 가볍게 뭐 같이 하실래요 해서 했어요. 그 모임이랑 또 제가 ‘세마 코랄’에 인터뷰 기반의 글을 한 편 쓸 때, 동료 비평을 주제로 얘기도 나누고 그랬거든요. 그러다가 모임에는 디자이너도 있고 출판사도 있고 작가도 있으니까 같이 책 한 권 내자. 그래서 작년 언리밋을 목표로 『미술 구술』을 만들었어요. 내부적인 갈등과 불화를 겪으며…

동인 불화?

선미 매끄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여로 가영 님과 선미 님이 맞짱을

동인 에? 이런 거 말해도 돼요?

선미 아니 근데 너무 아름다운 것만 알려줄 수 없어. 독립 출판은 덜컹거리는 거니까. (여로: 맞죠.)

여로 두 분이 그래서 맞짱을 한 번 뜨셨어요. 그렇게 뜨고, 지금은 화해하고, 너무 저만 빠지는 것 같네요, 저도 중간에서 힘든 것들이 많았죠. 각자의 성격이나 특성을 살리면서, 그러니까 기존의 노동자-되기에 요구되는 것과 다른 조건 속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문제들, 마감이라던가 정산이라던가 제작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해결해나갈 것이냐… 가령 선미 님이 정산을 어려워하셔서 언리밋 때 한 두 달? 정산이 안 되어서 나중에 저도 제발 해달라고 읍소하고(웃음). 제작비가 갑자기 바뀐다던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반복해서 이야기 나눴었어요. 서로 서로 당근과 채찍을 잘 때려야 하는데, 사이가 틀어질까봐 당근만 주거나, 그러다 폭발해서 채찍만 때리거나, 하지 않고 잘 털어 놓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그런 미팅도 몇 번 있었고… 제 문제는 선미 님이 해주시기로(웃음). 얼마 전에 군산에서도 『미술 구술』 2쇄랑 각자의 출판물을 또 발표했는데,하고요. 이번에는 입금이랑 정산을 제가 받아서 했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레 1인출판사가 해야 하는 종합적인 역할을 나눠서 하게 되더라고요.  (동인: 아하…) 아, 청탁 메일을 지금 발견했는데요. (동인: 몇 년도예요?) 올해예요, 올해 1월. 

선미 보통 제가 이렇게 청탁할 때 기획서 같이 뭔가 이렇게 형식이 정해져 있기보다는 좀 그냥 구구절절하게 메일을 보내는 편이에요. 당신의 이런저런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당신의 이런저런 게 저한테 이런저런 이유로 와닿았고…

여로 선미 님이 캐치하신 그런 순간들이 적혀 있어요. 선미 님과 『미술 구술』을 같이 만들 때도 제가 정산이나 유통 이런 부분에서도 여러 아이디어를 냈거든요. 그런 부분도 떠올려 주신 것 같아요.

선미 맞아 맞아. 도움이 많이 됐어. 그리고 그 당시에 세마 코랄 집담회할 때도 여로 님이 세마 코랄의 김진주 편집자의 역할을 자세하게 언급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정도 당연하겠지만, 저자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기도 한데, 그걸 짚어 준 점이 인상 깊었어요.

동인 편집자의 역할을 짚어주시겠다는 게 뭘 말하는 거예요?

여로 세마 코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공간인데요, “의제 탐구, 미술 작가의 연구 프로젝트, 현대미술의 비평과 이론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통의 지식 구조체를 만들어” 간다고 소개해요. “세마 코랄은 ‘함께 관계 맺는’ 지식과 연구를 지향합니다. … 계속해서 번져가는 산호의 생김새는 다양성과 생태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지식의 연속적인 출현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문구도 있고, 표어도 ‘모두의 연구실’이에요. 지금은 편집자가 권정현 선생님으로 바뀌었는데, 처음에 그 이전에 세마 코랄의 특수성을 만든 게 저는 김진주 선생님이세요. ㅇ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마 코랄에는 여러 분야에서 온 글이 실려 있어요. 평론가뿐 아니라 작가도 있고 미술과 관련 없는 필자도 있고 다양해요. 그런데 그 다양함이라는 게 사실 쉽게 착취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잖아요. 엔솔로지 형식, 보통 잡지가 매 차례 주제를 정해서 관련 필자를 수집하는데, 사실 바로 그 앤솔로지의 유래 자체가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국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려고 만든 거라고 해요.

선미 진짜요?

여로 넹. 임경용 쌤이 알려주셨음.

동인 선집이라는 형태로 어떤 지식을 표적해 수집하고 입맛대로 정식화했다는 걸까요?

여로 어떤 제국의 짱인 내가 모르는 미지의 국가 A가 있으면, 이거에 관한 무슨 무슨 학자, 무슨 학자, 지리학자, 사회학자, 뭐 이렇게 다 불러 모아서 니들이 연구해서 지식 하나씩 가져와 봐, 하고 모아서 책으로 저장하는 거였다고 해요. 저도 기성 문예지 같은 데 글을 써봤을 때도 그냥 방식이 똑같거든요. 뭐, 이번 주제가 ‘인공지능’이야, 그러면 관련 필자들 착 목록 뽑아서 메일 보내고, 뭐 ‘재현의 윤리’ 특집이야, 그러면 또 착 목록 뽑고, 글 오면 싣고. 그러고 나면? 다음이 없어요. 여러 군데에 글을 발표하던 필자들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진 것이 전부예요. 그냥 매 회차로 이 사람들이 오는 건데, 세마 코랄은 달랐어요. 회차마다 어떤 키워드들이 있는데, 키워드에 적당히 맞는 사람한테 청탁 돌리는 게 아니라, 한 단계가 더 있다고 느꼈어요. 어떤 주제에 바로 이어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지닌 관심과 연구 주제가 언뜻 보기에는 멀어 보여도, 이번 주제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연구해서 섭외 메일에 달아 주셨어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런 굴절이 한 번 있다는 게 너무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동인 예를 들어, 무기 산업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페미니즘 관련해 글을 청탁하면서 ‘당신의 연구와 이 주제가 만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고 써달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죠.

여로 네 그러니까 그런 필자의 개별성을 같이 캐치해서 자기가 내가 당신을 어떻게 이해해서 이 주제로 청탁드린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향의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어도 좋다.

동인 에디토리얼십이 빛나는! 그나저나 이야기가 좀 멀리 간 것 같은데, 뭐 좋아요.

여로 아무튼, 선미 님의 제안 메일에는 그냥 ‘기획:1 출판사의 올해 출판 계획을 듣고 싶다’였어요. 근데 제가 이걸 독립 출판이라는 더 큰 영역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일단 ‘독립’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야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동인 그리고 그게 책으로 나왔잖아요. 네, 이거. 책 디자인이라든지 제작 방식이라든지 분명히 내용과 연결하고자 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미 여로 님도 디자인에 관해서 아이디어나 조언을 많이 주셨어요. 아일릿 제본도 그렇고. 이게 뒤에 판권면에 보면 디자인 크레딧이 같이 올라와 있거든요. (동인: 오, 그러네요.)

여로 우선, 구글 독스 화면을 그대로 담는다는 거는 『미술 구술』 때부터 선미 님이 가져가셨던 철학인 것 같아요. 어떤 미디엄을 노출한다는? 내가 사용했던 도구를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을 『미술 구술』 때부터 적용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는 구글 프레젠테이션, 그니까 PPT였죠.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이거 PPT 같다”라고 말씀들 해주셔서 재밌었어요. 그리고 음악가 류한길 님 말씀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2009년 안팎의 자주 출판이 대체로 진(zine)이었거든요. 근데 하다 보니까 우리도 기성출판의 단행본 꼴을 따라가게 되더라는 말씀을 류한길 님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 책도 그냥 무선 제본이 될 예정이었는데, 첫째로 그런 관습을 별 의견 없이 따라가도 되려나 그런 생각이 있었고, 두 번째는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어요. 마감을 맞춰야 하니까. 이념과 현실의 만남. 그래서 선미 님한테 이거는 무선제본 이런 거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래 이거를 집에서 그냥 A4로 뽑아서 만들자, 그렇게 꼴골이 정해졌죠. 거기에는 이제 제작비 절감의 목적도 있고 소규모 출판에 맞는 형태에 대한 고민도 있고. 아까 얘기해 주신 아일릿은, 펀칭기가 제 집에 있었어요. 원래 제 모자를 리폼하려고 샀거든요.

동인 모자요?

여로 네, 도쿄 데님 브랜드 숍에 놀러 갔을 때, 버킷햇이 6 패널인데 패널마다 이 아일릿 펀칭이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썼을 때 너무 쾌적해. 통풍이 되어서. 사진 하나 넣어 주세요. 사진 넣기

동인 여쭤본 이유가, 책 내용과 잘 조응하는 디자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글쓰기와 출판하기 사이를 아주 짧게 붙여놓은 듯한 디자인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 나는 작업이 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거든요. 어떤 작가가 건물 고층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그 옆에 컴퓨터랑 프린터를 둔 다음, 즉석에서 글을 쓰고 프린팅 눌러요. 그 프린터가 창가로 향해 있어서 창문 밖으로 날아가요.

여로 그렇게 해서 누가 주워요?

동인 넹. 길거리에 떨어지는 순간 퍼블리싱. 이런 퍼포먼스를 한 사람이 있는데 책 디자인도 뭔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쓰기가 곧 디자인인 것, 구조가 곧 외면인 것이? 그리고 이게 홈메이드가 되는 사양이라는 것도,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잖아요. 전날 출력해서 현장에서도 펀칭을 직접.

선미 뒤표지의 10시간 전, 이게 진짜예요. 10시간 전에 마지막.

동인 진짜 이게 전에 페어 개장 전 10시간인가요? 재밌네요.

여로 맞아요. 그게 재밌었어요. 이게 초판본을 너무 적게 가져와서 첫날 다 나가서 선미 님이 군산에 있는 인쇄소에 진짜 당일에 맡겼어요. 그러니까 근데 그걸 가져오니까 진짜 물리적으로 이게 따끈따끈한 거예요. 방금 진짜 따끈따끈한 걸 제본해서 주는 게 재밌었어요. (선미: 제빵 같다)

동인 발행 일시네요. 진짜 여기 없어요. 발행일이.

여로 발행일이 없어요?

동인 네, 좀 보세요. 그래서 뒤표지가 발행일인 줄 알았는데

여로 왜 발행일이 없지? 발행일은 있어야 되는데.

선미 이거 편집해 주세요…

여로 아 근데 없으니까 더 의미가 생기네요. 매번 읽는 독자한테 10시간 전 발행이다. 저희는 발행일이 없습니다.동인 다음 질문인데요, ‘기획:1’이랑 ‘화이트리버’는 독립 출판 유닛으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하고 그런 정의를 거부하거나 우회하거나 아니면 아예 활용했는지 아니면 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할 것인지 궁금해요.

좀비출판의 첫 책은 『스몰 스튜디오, 스몰 신, 대전, 대구』(아래부터 『스몰』)인데요, 사실 좀비출판은 『스몰』만을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첫 번째로는 『스몰』을 내 줄 출판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두 번째는 내가 책 디자인을 할 수 있고, 제작 의뢰하는 법을 거칠게나마 아니까, 출판사만 등록하면 되겠다는 생각. 물론, 출판사 없이도 가능했겠지만, 제도적 인정을 바랐던 듯? 그렇게 『스몰』을 열심히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스몰』을 위해 만들었던 출판사였으므로 『스몰』 출간 이후의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해 졸업작품으로 준비한 『식탁은 걷는다』(아래부터 『식탁』)를 두 번째로 자연스레 냈고요.

사실 『스몰』과 『식탁』을 놓고 보면 하나는 ‘디자인 신과 지역’이고, 하나는 ‘이주와 요리’잖아요. 인터뷰집과 레시피북. 내용이든 카테고리든 외양이든 서로가 연상되지 않고, 실제로 그 연결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기도 해요. 단순히 출판사가 있었고, 내고 싶던 이야기가 있는 것에 가까웠어요. 다시 말하면 출판사 정체성이 없는? 다만, 출간서가 계속해서 쌓인다면 그것이 거꾸로 출판사를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말은 출간서가 어떻게 쌓이느냐에 따라서 출판사의 정체성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는 뜻일 거예요. 저는 그 망각과 유동성이 마음에 들었고, 독립출판이므로 가능한 정신상태라는 생각 또한 했습니다. 그렇게 고정되지 않은 채로 변화하고, 계속해서 실패하고, 망치며 진격한다는 사실이 좀비라는 주체와 좀비출판이 앞으로/당분간 연루될 퀴어성과 밀접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쓰신 책의 “한 단어 다음에 무슨 단어가 올 지 알 수 없는 언어 행위처럼, 독립출판은 ‘계속 말한다’는 원칙 아래 끝없이 지난 발화를 변경하면서 자기 말의 근거를 다음의 말하기에 두”는 것이다, 라는 말에 공감했던 것 같아요. 좀비출판은 계속해서 불리고 싶어요. “이게 (출판사)인가?” “장난 같다” “진지하지 않다” …


여로 저는 동인 님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강한 규범이나 이념, 계획이 우선했기보다 그냥 일상적인 욕구나 필요가 먼저 있었고, 그게 사상을 만들어 나가는 구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구조가 괜찮은 것 같아요.

2019년에 『자매』를 혼자 출판했을 때, 독립출판의 문화적, 정치적, 미학적 기원이나 역사는 몰랐어요. 다만 동네에 독립서점 몇 곳 있었고, 그냥 ‘아, 혼자서도 출판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자매』를 읽다가 ‘어, 번역이 조금 어색한데’ 느껴서 혼자서 번역을 고쳐 보았고, 그것은 책상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몇 달을 끌어 번역했는데요, 원고를 완성하고는 인디자인을 배워 내지 디자인 비슷한 것도 하고, 친구에게 표지를 부탁하고, 인쇄제작 문화에는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에 온라인에 검색해서 나온 곳에 그냥 ‘주문’을 했죠.간편하게  POD(Publish On Demand) 사이트에서 주문했어요. 그리고 다시 동네 서점 몇 곳에 입고했고요. 이 과정을 지나면서 ‘아,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라벨링 없이도 독자가 텍스트의 가치를 직접 자문해 볼 수 있구나.’ ‘텍스트가 어떤 실천을 매개하고, 그 행동이 다시 텍스트로 돌아오는 경험을 나도 할 수 있구나. 어떤 자격과 권위와는 다소 무관할 수 있겠구나’ 하고 사후적으로 알게 된 거죠. 만약 제가 ‘독립출판은 급진적이고 새로운 내용을 말해야만 하노라’ 이런 이념을 먼저 가졌더라면, 이런 출판 경험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독립)출판의 욕망은 다양하겠지만, 저에게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기보다 ‘번역을 고쳐 보고 싶다’ ‘그리고 번역에서 시작해 책 유통까지 하나를 끝까지 매듭해 보고 싶다’라는 것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무척 표준적인 한국인 생애 주기를 살아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학교, 대학, 군대처럼 마련된 제도들을 통과하면서 어떤 일을 처음부터 벌여서 끝까지 책임지는 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그런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는 한편, ‘번역을 고쳐 보고 싶다’처럼 별 생각 없이 욕구에 맞춰 그냥 하는 일 있잖아요. 반대로 기존의 이게 기성출판이나 그런 문법 혹은 습속이 있는 1인출판의 특징인 것 같아요. 1인출판은 보통 큰 출판사에서 어떤 사람이 편집장까지 하다가 나와서,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저자, 인맥, 지식, 이런 걸 합쳐서 계획적으로 딱딱딱 맞춰서 책 내고 언론 돌리고, 그렇게 몸집을 키우는 모델인데, 그런 것과 정반대인 것 같고. 

아무튼, 저도 어떤 기준이 먼저 있어서 그 기준에 출판물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그때의 관심, 그때그때 내가 교류하는 사람들이 출판물의 내용과 성격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동인 1인출판이란 매 순간 발행인의 성격과 관심사가 노출되는 구조이기도 해요. 큰 출판사는 어떤 이미 기치와 목표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죠. 건축 관련을 내겠다, 아니면 뭐 어떤 목소리를 내겠다. 그렇게 어떤 브랜드 정체성이 새로 마련되는데, 1인출판은 어쩔 수 없이 발행 주체가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출판하고 홍보하고 그러기 때문에 비교적 발행인의 많은 것이 여실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정체성이 출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간서들의 통일성, 일관성, 전문성을 너무 따지고 드는 것도 어느 정도 가부장적인 관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선미 저도 그냥 그때마다 얘기를 들어 보고 싶은 사람, 그때마다 관심 있는 사람과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되도록 여러 사람과의 협업해야겠다는 생각. 출판사 화이트리버의 이미지가 강해지기보다는 그때그때 연결되는 사람들이 출판사 스타일을 이끌어 주면 좋겠다. 이렇게 거칠게 생각하긴 해요.

동인 네, 평생 거칠어도 되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두 분 출판 유닛 다 어느 정도 즉흥적이고 그렇죠. 자연스러워요. 삶과 밀착해 있어요. 그리고 출판이 제겐 공부이기도 해요. 어떤 주제에 마음이 끌릴 때마다 늘 도서 기획을 함께 상상하게 돼요. 왜냐하면 출판한다고 하면, 공부와 그곳으로의 여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출판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로 맞아요. 전혀 모르던 분야를 알게 되어 공부하게 되고.

선미 저는 좀비출판도 그때그때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약간 맥이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내는 책을 보면 그 발행인에 관해서 많이 엿볼 수 있는 것도 같아요.

동인 확실히 화이트리버는 발행인인 선미 님 성격처럼 뭔가를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특히 사람에 호기심이 많고, 그렇게 흐르는 것 같아요.

선미 리스크가 무섭습니다. 사람 중심으로 출판사를 이끌면요.(웃음) 예를 들어서 저자에게 이미 섭외가 됐는데 뭔가 사건이 터졌다, 이러면. 진짜 고민이에요. 

여로 저도 함께 책을 냈던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를 사석에서 계속 옹호한다는 사실을 안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협업하지 않기로 하고, 남은 책은 폐기하고 그랬네요. 그런데 '리스크'라는 말은 조심스러워요. 그걸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기존의 대형출판사들이 하는 '손절 문화'가 되어버리니까요. 출판사라는 집단적 권리 주체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 가이드라인도 없고 규범도 없어요. 대형출판사들 내부 사정을 모르지만 대부분 대표나 편집장이 결정해서 밀어붙이는 것 같거든요. 사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출판사가 작가를 옹호하냐 버리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 때 내외부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정지돈 소설가의 사생활 무단 사용 사건에서도 은행나무 역시 어느 선에서 멈춘 다음에 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입장 발표를 했죠. 아예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도 있고. 1인출판사가 이런 부분에서 어떻게 다르게 잘 할 수 있을까? 소극적으로는 서로 충분히 알아보는 관계를 미리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인적 교류로 이뤄지는 미술계도 그렇고 무슨 잡코리아나 블라인드처럼 평판 조회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방지'의 차원이 아니라 '함께 책임을 진다'라면, 글쎄요, 저도 지금까진 그렇게 못했지만, 그 주제로 하다못해 작은 Zine이라도 만들어서 내지 않을까 싶네요. 여러 사람들 글을 모을 수도 있고요. 출판이 문제되었을 때 그 출판을 어떻게 나누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까, 고민입니다.

저도 함께 책을 냈던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를 사석에서 계속 옹호한다는 사실을 안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협업하지 않기로 하고, 남은 책은 폐기하고 그랬네요. 서로 충분히 알아보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출판계에 무슨 잡코리아나 블라인드처럼 평판 조회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동인 그러게요. 이 작가랑 뭔가 예를 들어서 책을 냈는데, 이후에 이 작가가 뭐 공론화가 됐어. 그러면 입장을 내거나, 결단하거나, 공론화가 된 김에 이 사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며 공론장을 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공론화가 아니고 그냥 수근수근만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다소 난감하겠네요. 본인에게 이 소문이 사실이냐고 질의해야 할지.

선미 저도 한번 겪어 보고 공유할게요.

동인 좋습니다. 이것도 학습 과정이네요.

선미 그렇죠. 학습… 그런 만큼 출판하면서 실수도 많이 하죠. 여로 님한테 계약서, 제작 단가 이런 거, 구박도 좀 들었던 것 같은데요.

여로 현실적인 차원에서 구박드렸던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독립출판의 분위기가 조금 더 세속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딴 데서 벌어서 독립출판에 쓴다는 말에 못 웃어요. 저는 독립출판으로도 일정 부분의 수익이 나서 분산적으로나마 하나의 경제적 보탬이 되어야 된다고 항상 생각해요. 수익 계산 등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적자를 낭만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별 생각없이 뛰어들 때라도요. 내가 독립 출판으로 한탕을 치겠다 이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경제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 모델들을 새로 대안적인 노동, 대안적인 수익을 실천하자는 거예요.

선미 나는 사실 책으로 먹고 살고 싶어! 수익을 내고 싶고, 다음 책을 만들고 싶고.

동인 제 로망이 그것이에요! 책 판 돈으로 다음 책 만들기.

선미 저는 이 독립출판과 돈에 관해 아무도 말을 안 해줘서 저도 마진 이런 것 고려 없이 처음에 막 진짜 그냥 예쁘게 하고 싶었거든요. 당연히 일해서 번 돈으로 출판사를 운영해야지, 이렇게요.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아, 모기가 귓바퀴를 물었어! 너무 간지러워가지고 왜 왜 얘가 왜 귀를 물었지.

동인 으악 저도…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사실 이번에는 출판을 준비하는 어떤 내부 시스템 얘기예요.

좀비출판은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제도적인 인정이나 규범을 (그게 부조리하지 않은 이상은) 단순히 기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식적 거부를 한 적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독립출판’으로의 정체성이 좀비출판에는 희박합니다. 저는 좀비출판이 1인이 아니라 10인이 되어도 좋고, 저번엔 『식탁』을 잘 홍보하기 위해서 예스24 배너 광고 가격표나 홍보 기자 목록을 뒤적이기도 했어요. 결국 돈이 없어서 못 했지만! 그런데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돈이 없어서 기성출판은 곧 죽어도 못 따라 하겠더라고요. 그리고 규모가 격하게 다르니 기성과 독립은 출판에 대한 모든 세팅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통상적인 저자 인세가 10%잖아요. 불문율 같은… 얼마나 이게 표준이면 도서출판 11%라는 곳도 나오나 싶어요. 인세를 1% 더 준다는 것을 모토 삼은… 아무튼, 그 10%를 좀비출판 책에 적용한다고 하면 저자는 아주 운이 좋으면 월 1만 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요즘 하는 고민인데 제가 번역서를 내고 싶거든요. 근데 그렇게 번역기 돌려서 블로그 같은 데 올릴 거 아니라면 책으로 만들 거라면 그래도 번역질이 괜찮아야 될 텐데 그리고 판권도 어쨌든 사야 하고, 근데 저도 출판계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지만, 그냥 대충 그냥 언뜻 알기로 번역과 페이가 사정이 다 다르겠지만 매절하면 200에서 3~400만 원 정도 되는 걸로 그냥 대충 알고 있는데 도저히 그걸 낼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북 펀드? 더 파격적인 인세? 아니면 D.D.I.Y.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협력자로, 공동창작자로 만드는 책! 서로 친해진 다음에 만들기! 서로 빚지며 만들기! 지금 준비하는 사진책이 비슷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 세 사람이 참여하는데, 한 명이 작가, 한 명이 기획자, 한 명이 나인데, 나는 디자이너 겸 기획자, 퍼블리셔로 참여합니다. 누가 누굴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라리 팀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 수익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돈이든 시간이든) 공동출자처럼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새로운 시스템을 출판 과정에서 어떻게 창안하면 좋을지 가벼운 아이디어를 나눠 보고 싶어요.

여로 저는 지금까지는 제작비부터 다 n분의 1 해서 수익도 n분의 1을 주로 하고 있어요.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공저자 동휘 씨한테 25% 드리고. 동휘 씨가 글만 원고만 전달하고 끝이 아니라 애초에 이 책의 기획부터 어떻게 유통할 건지 디자인 어떻게 할지 이런 걸 같이 다 논의한 몫이고 그래서 미디어버스랑 공동 발행을 해서 정가의 50%를 이제 미디어버스 가져가고 나머지 50%를 저와 동휘 씨가 나누는 거죠.

동인 제작비는 어떻게? 미디어버스랑 공동출자했나요?

여로 그거는 초판 제작비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 전문 서적 그게 돼가지고 사실 그래서 수익이 많이 났죠. 초판 제작비를 그걸로 아예 충당했으니까 그랬고.

동인 그럼 2쇄했을 때는요?

여로 2쇄 제작비는 저희가제가 냈어요.

동인 그런데 왜 2쇄 수익의 절반을 미디어버스에서 가져가는 거예요?

여로 그러게요?

동인 네?

여로 아, 아니야 원래 미디어버스가 제작비를 내겠다고 했었고, 그러니까 지금 유통을 미디어버스가 전담해요.(웃음) 책이 그쪽 물류 창고에 입고되어 있고 미디어버스에 판매 이런 걸 다 그냥 미디어버스가 해요. 물류창고 비용, 사무 노동 같은 것까지 따지면유통비 이런 걸 하면, 사실 순수익은 미디어버스도 한 5~10%밖에 안 되겠죠. 공정 계약입니다.

동인 그러니까 뭔가 일단 그거 먼저 궁금한데 그러면 그 아까 미디어버스랑 기획이랑 함께하는 공동 출판 모델은 어떻게 그게 성립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서 먼저 제안하신 거예요?

여로 그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했더라? 아, 내가 제안했던 것 같다. 미디어버스에서 1시간 총서라는 시리즈가 있어요. 그 시리즈에 필자로 처음에 제안을 주셨어요. 근데 내가 출판사가 있으니까 내가 필자로 하는 것보다 그냥 출판사 대 출판사로 공동 발행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가 역제안했어요. 그래서 성사가 됐죠. 이미 미디어버스에 신신과의 공동 임프린트 ‘화원’도 있었고. 그리고 『미술 구술』도 근데 똑같이 제작비 n분의 1 하고 수익도 n분의 1.

동인 가영 님까지 셋이서 공동이 돈 모아서 내고 그거에 수익을 나눠갖고. 팀플이네요. 

여로 이후에 이제 온라인 판매되는 분량은 이제 유통을 선미 님이 담당하니까 몇 퍼센트를 이제 선미 님이 더 받고 뭐 이런 식으로.

선미 맞아요. 제가 인세 계산에 약해가지고.

동인 저도 지금 숫자, 막 퍼센트 들리니까 너무 괴롭네요.

선미 고민이에요. 『미술 구술』 2쇄도 매절로 드렸는데예상 판매 부수의 10%로 하고 드렸거든요. 그런데 동인 님 말씀 듣고도 그렇고, 제작가도 줄어서, 여로 님이랑 가영 님 몫을 더 챙겨드려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동인 그런 고민이 계속해서 드는 것 같아요. 책을 여러 사정으로 만들다 보면. 뭔가 기성출판처럼 체계가, 예산이 있어서 고용하고 돈 주고 이렇게 깔끔해지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면 뭔가 친해져서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고 서로 뭔가 빚지면서 양해를 구하면서 만들고 같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독립출판의 특이점, 가치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선미 감정을 되게 많이 교류하게 되는 거예요. 진짜

동인 그렇죠 아까 두 분 말씀하신 맞짱만 들어봐도.

선미 혹시 여로 님은 미디어버스 말고 그렇게 또 공동 출판 발행하고 싶은 출판사가 있으신가요?

여로 하고 있잖아요. 선미 님이랑 (웃음) 좀비출판이랑도 해도 되겠고요.

동인 근데 이제 팀플레이 출판이 좋은 저희한테 제일 잘 맞는 방법인 것 같긴 해요. 저도 지금 내년에 나올 사진책을 준비하는데 거기에 그 작가랑 그리고 기획자명 있고 저 있거든요. 그것도 거의 그냥 진짜 팀플처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수익 배분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까요? 상의해 봐야겠지만. 그런데 이제 사실 모든 학교든 바깥에 뭐 회사든 모든 팀플이 그렇듯 그런 걸 조율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어떤 감정이 상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런 건 잘 알아서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여로 배우고 그 품앗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도 제가 선미 님이 낼내 책에 제가 편집을 봐주고 선미 님이 제가 낼 책에 디자인을 해주고 이럴 수도 있잖아요.

선미 품앗이! 일반적인 자본주의 경제로는 노동력의 대가를 지불하면 가장 깔끔한데, 우리는 돈이 없으니 그렇게 못하고, 또 그러니 안 해보는 거잖아요. 노동을 소비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일 때, 우리는 무엇을 교환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거죠.

동인 상황극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좀비출판에서 지금 어디 다른 나라에 나와 있는 선미의 자서전을 번역하고 싶어요. 그런데 돈이 정말 없음. 이때, 여로 번역가한테 너무나도 적은 돈으로 맡기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떤 식으로 제안하면은 말이 될 것 같아요?

여로 판매수익의 몇 퍼라고 할 때,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예상 판매 부수가 표준적인 번역 인세에 도달할지 계산을 한번 해보고, 그런데 만약에 도달이 안 돼, 그렇다면 이 출판물이 한국어로 나온다는 가치에 공감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이 선미의 자서전에 관심이 있어야겠죠. 그냥 내가 진짜 좋아하는 글을 자발적으로 손해 보며 하려는데, 그 자발성을 이제 공동의 것으로 설정할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 같아요. 내가 이 사람한테 가서 뜬금없이 그냥 내 자발성만 내세우면 그냥 부조리한 거지. 그런데 실제로 제가 지금 다른 번역가님과 준비하는 일본 기독교 이단 관련한 책도 에이전시 껴서 벌써 초반에 300만 원이 들었어요.

동인 에이전시 서비스 비용이 300만 원이에요? 아니면 판권비가 300만 원?

여로 에이전시 비용은 30만원 정도고, 판권비가 2,000달러예요. 다 합쳐서 300.에이전시가 50만 원에서 100만 원이고, 판권비가 300만 원이에요.

동인 판건비가 300만 원이면 비싼 편인가요? 잘 몰라서요.

선미 평균 아닌가요?

여로 저희가 판권을 사 오는 데가 대형 출판사인데, 대형 출판사 평균이 그쯤인 것 같아요. 만약 출판사나 저자의가 조금 마이너하면, 유럽의 경우에는 한 100만 원 정도도 많다고 그러데요. 그런데 이제 이게 베스트셀러다, 아주 유명 작가다, 이러면 이제 20억 이렇게 가는.(웃음) 아무튼 그 판권비랑 에이전시 비용을 번역자가 냈어요. 저는 발행출판인으로서 에이전시 계약과 소통과정 등 사무적인 걸 맡고, 책의 편집을 도맡고, 소개글도 쓰고. 수익은 번역자가 지출한 것을 최우선으로 공제하고, 전체적으로는 반반 나누기로 했어요.

선미 방식이 새롭다! 그렇게 해도 되는군요.

동인 정말 번역서는 뭐 판권이나 에이전시 비용 등을 생각하면 천만 원이 쉽게 깨지겠군요.

여로 일반적으로 줄 글로 한 400페이지면 적게 잡아도 외주 편집 한 1~200만 원, 깨지죠. 디자인 1~200만 원 정도 아닐까요. ㅈ깨지죠. 

선미 그래서 많은 1인출판사 운영하시는 분들이 결국 디자인을 직접 하시더라고요.

여로 네, 저도 그랬고. 보통 1인출판사가 어떤 기능을 겸하잖아요.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그런데 벅차기도 하고, 전문성도 부족하고, 갇히기도 하고. 그래서 아까 그 품앗이, 1인출판사들끼리 돕는 거 괜찮은 거 같아요. 두 분도 서로 그렇게 하시고. A는 디자이너인데 편집은 볼 줄 몰라 B는 편집은 볼 줄 아는데 디자인을 못 해. 그러면 서로 같이 출판.

동인 협동조합 모델!

여로 네,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서 이렇게 일대일로만 교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 이런 책 만들 건데 같이할 사람?’ 해서.

동인 예를 들어서 협동조합에 열 명이 있으면, 그 톡방에 ‘이런 외서를 번역하고 싶다, 그런데 돈과 역량이 부족해 혼자서는 못 하겠음. 혹시 관심 있는 사람?’ 그러면 그 안에서 한 둘셋 붙어요. 그러면 이제 공동 출자하고, 일할 건 나누고. 수익 나누고. 그런 책들이 여러 권 있고.

여로 되게 괜찮은 것 같아요.

선미 일대일 교환만 생각했는데 다대다 교환도 굉장한 힘이 있겠어요.

동인 조합사가 열 팀이면 두 쌍으로만 결합한다고 해도 마흔다섯 가지 경우가 나오는 거죠. 세 쌍이면 백이십 가지 경우예요. 그리고 그 조합마다 다 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여로 오늘 만들죠!

동인 주위 1인출판사들 연락해서. 정말 최소 활동으로는 정보 공유 단톡인 거고, 단톡에서 일이 성사되면 공동 출판으로 이어지는 거니까요.

여로 확실히 자립할 수 있는 규모를 자립 출판사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동인 독립 음악 생산자 조합 기억하시죠? 매달 오천 원씩 조합비가 있고 그 모인 돈으로 다른 음악과 조합원의 음반 발매를 지원하는 시스템이었잖아요.

동인 아무튼 총서도 보니까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 1권부터 5권까지는 어떤 출판사고, 6권부터는 또 다르고, 그렇던데요. 총서라는 것이 약간 그런 개념을 내포하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출판사를 초월해서 어떤 이야기의 어떤 집합이 있고, 여러 출판사가 그곳에 붙는?

여로 그러게요. 정말 저희도 총서 주제 정해서 각 출판사에서 한 권씩 내는 것도 재밌겠네요.
동인 그러게요! 상황을 보죠!